본문

독립운동가

박성삼(1887~?)

광주 학현(현 의왕시 학의동) 출신으로 박성삼은 의병대장 윤기의 부하가 되어 1907년 11월 20일경 의왕 청계산 위에서 일본 순사대와 교전하여 패퇴하고 그 후 경기도를 횡행하여 융희 2년 2월경까지 경기도 각 곳에서 군량 및 군용자금을 징탈하였다는 이유로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5년을 받았다.

이희승(1896~1989)

광주 의곡면(현 의왕시 포일동) 출신으로 1932년 조선어학회 간사로 피선되어 36년간 중임하였으며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검되어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서 3년간 투옥되었다가 1945년 8.15 광복 후 출옥했다. 1962년 3월1일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성주복(1894~?)

수원군 의왕면 청계리(현 의왕시 청계동) 출신으로 성주복은 1919년 3월 5일 남대문 역전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남대문을 향하고 동부 내로 행진하는 군중의 집단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하여 경성 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봉근(1903~?)

의왕시 청계동 출신으로 3.1운동 당시 배재학당 출신인 친우 성주복,이복길 등과 결탁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태극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7일간 야간에 제작하여 각 리에 배포하였으며, 오리동 고개를 넘어가 고천 주재소 앞까지 만세를 부르고 현 내손동(갈미)으로 진출하면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지휘해 가다 왜병의 총에 맞아 오른쪽 허벅다리에 관통상을 입음. 이후에도 계속하여 문맹퇴치운동에 힘써 청계 계명야학원을 설립하였다.

컨텐츠 라이센스

공공누리: 출처표시 (제1유형)자세히보기

의왕시청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독립운동가}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공공누리 공공자작물 자유이용허락

담당자 정보

콘텐츠 관리부서 : 문화체육과 문화예술관광팀  김병창 ☎ 031-345-2533 최종수정일 : 2017-02-25

만족도 조사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평점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