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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김충백(1554~1613)

김충백의 자는 군서이다. 천성적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하였는데, 잠시 어머니를 잃어버려 죽음을 무릅쓰고 백방으로 찾아 헤맸다. 어머니는 적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적은 그의 효심의 지극함을 알고 위로한 후 어머니를 돌려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충백은 여묘를 지어 3년을 살면서 친히 불을 지피고 아침, 저녁으로 슬피 추모하였다. 묘는 의왕시 왕곡동 왕림에 있다.

한성우(1633~1710)

한성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윤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데 정성을 다하였고 공이 병이 나거나, 유고한 일이 아니면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의술을 몰라서는 안된다고 하며 의술을 대략 깨우쳤으며 부모가 돌아가실 때는 매우 슬퍼하였고, 묘옆에 움막을 짓고 곡을 함에 있어서도 풍우를 피하지 않고 정성으로 묘를 돌보았다. 효성은 친·외가를 가리지 않아 외선조의 비각을 손수 세웠다. 두 형을 엄부와 같이 섬겼으며, 막내 동생의 궁핍함을 없게 하고 아버지를 여읜 조카를 정성으로 가르치고 이끄니 효성과 동기간의 우애가 천성적이라 하겠다. 묘는 의왕시 이동 창말에 있다.

강우창(? ~ ?)

강우창은 조선 후기 사람으로 왕륜면(현 의왕시)에서 생거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선에서는 그의 지극한 효성을 알고 호조좌랑에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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