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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암동

월암동(月岩洞)

조선시대에는 광주목 월곡면의 일리와 이리였다가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 '지방구역 정리 건'에 의거 안산군 월곡면 월암리로 되었으며, 1914년 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원군 반월면 월암리로 변경되었다. 광복후 1949년 8월 15일 화성군 반월면 월암리라 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 월암동으로 변경되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광주목 월곡면의 '월(月')자와 마을을 둘러싼 산에 바위가 많아 '암(岩')자를 따서 '월암동'(月岩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월암동에는 건너말·골잰말·당재마을·도룡마을·방죽말·부처마을·새텃말·웃말·잰말·조씨마을·큰말 등의 자연취락이 있다.

자연취락명일반지명

  • 건너말
  • 도룡마을 북쪽으로 조씨마을(中村)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어 '건너말'이라 부르고 있다. 건너말은 조선초기에 남원 양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이래 화성군 봉담면 출신 최이호씨가 1400년대에 이곳에 이주해온 후 그의 후손들이 세거해 오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 홀수 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골잰말(谷峴村)
  • 잰말 서쪽에 있으며 삼태기처럼 생긴 골짜기 안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여흥 민씨의 세거지이며 현재도 여흥민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 당재마을
  • 웃말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아랫말 뒷산 정상에 당집이 있어 '당재마을'이라 부른다. 또 웃말 너머에 당집이 있어 일명 '당재넘어'라 칭하기도 한다. 당집은 창녕 조씨와 송씨·홍씨등이 조선중엽에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주이씨와 성주도씨의 오랜 세거지로 현재는 성주도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아랫말 뒷산 정상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도룡마을(道龍洞)
  • 건너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광주목 월곡면 도룡동이었다. 이 마을은 마을 앞길이 형세가 풍수로 보아 용의 혈인데,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도룡동'이라 했다는 것이다. 도룡동은 세종대왕때 광주이씨가 처음으로 세거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지금도 광주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방죽말(防築洞)
  • 조씨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말엽에 이곳에 방죽이 생긴 후 취락이 형성되었으므로 '방죽말'이라 부르고 있다.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세거한 방죽말은 2년마다 당재마을과 웃말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부처마을(佛井)
  • 새텃말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중엽에 이 마을 동남쪽 산중턱에 있는 옻우물위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부처마을'(佛井)이라 부르고 있다. 구한말에 성주이씨가 처음으로 자리잡은 부처마을은 지금도 성주 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 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새텃말
  • 이 마을은 본래 조씨가 부자로 살다가 망한 곳이라 해서 '망석골'이라 불렀다가, 그 후 조선말엽 성주 도씨(성주 도씨)가 새로 터를 잡고 살아 '새텃말'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도 성주 도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당재마을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 새텃말은 마을 남쪽지역을 '아랫말'이라 부르고 북쪽지역을 '웃말'이라 칭하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 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웃말(上村·진태골)
  • 조씨 마을 위에 자리잡은 마을로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므로 '웃말'(上村)이라 칭하였다. 또 조선시대 어느 전란 때 군인들이 이곳에서 진(陣)을 쳤다고 하여 일명 '진태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주 도씨가 처음으로 세거했으며 지금도 성주도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 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잰말(峴村)
  • 큰말 서남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이므로 '잰말'(峴村)이라 부르고 있으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은 '왕소나무박이마을'이라 칭한다. 이곳 잰말은 광주 이씨가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 조씨마을(曺村·中村)
  • 이 마을은 조선 중엽에 창녕조씨(昌寧曺氏)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라 하여 '조씨마을'이라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창녕 조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조씨마을은 웃말과 방죽말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일명 '중촌'(中村)이라 칭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 홀수해인 음력 10월 1일에 당재마을과 웃말 사이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오고 있다.
  • 큰말(大村)
  • 부처마을 남쪽 경부철도 연변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성주 이씨 후손중에 이참봉이란 분이 큰 부자로 살아 '큰말'이라 칭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월곡면 대대리라 불렀다. 성주이씨를 비롯하여 광주이씨, 용(龍)씨등이 세거했으며, 현재는 성주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큰말은 마을의 동남쪽 지역을 '웃말' 서북쪽지역을 '아랫말'이라 각각 칭하고 있다.
  • 가골(家谷)
  • 장승박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 큰 기와집이 있었다 하여 '가골(家谷)'이라 부르고 있기는 하나, 일제말엽에 폐동되었다. 이안에 호랑이 무덤이 있다.
  • 강나무골
  • 동쪽 건너말 동북쪽으로 서낭골 아래에 있다. 구전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왜병이 이곳에 와서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이 어디로 피난갔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강남으로 피난갔다"고 얘기했다 한다. 현재는 농경지이다.
  • 달보기산(月峯山)
  • 부처마을 동남쪽으로 옻우물 뒤에 있는 산으로 도룡마을에서는 '안산'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에 월암동 사람들이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구경을 하던 산이기도 하다.
  • 당재너머 골
  • 당재너머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는 농경지로 되어 있다.
  • 당재너머 느티나무
  • 당재너머 마을 중앙에 있는 나무로 수령이 약 400년이다. 마을 촌로에 의하면 이 나무의 잎이 한꺼번에 활짝피면 풍년이 들고 여기저기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잎이 밑에서부터 피면 깊은 골짜기의 논에 모내기를 먼저하고, 높은 지대에 있는 논은 늦게하며, 반대로 위에서부터 피면 높은 지대의 모내기를 먼저 하고, 낮은 지대의 논은 모내기를 늦게 한다고 한다.
  • 당재너머 우물
  • 당재너머 마을 동쪽 끝에 있다. 예전의 대동우물로 월암동에서는 철분이 가장 많이 있는 우물이었다.
  • 면화박 고개
  • 큰말 서쪽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으면 왕송저수지에 이른다. 이곳은 예전에 면화(棉花 목화)를 많이 심었던 곳이라 하여 '메나막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구전에 따르면 어느 스님이 큰말을 좋아하여 이 고개를 넘으면서 큰말을 향해 큰 절을 했다고 한다.
  • 명당(明堂)뿌리
  • 선사골 서남쪽에 있는 산모퉁이로 현재 성주도씨의 선대묘가 있는 곳이 천하명당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명당자리는 아직 찾지를 못했다고 한다.
  • 밤밭고개
  • 도룡마을과 수은 밤밭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 방죽말들
  • 새말 앞에 있는 들로 이곳에 방죽이 있었다 하여 '방죽말들'이라 칭하고 있다.
  • 부처말골
  • 부처마을과 옻우물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는 농경지이다.
  • 삼박골
  • 강나무골 너머에 있다. 현재 농경지로 되어 있다.
  • 상나무박이
  • 용아가리에서 남쪽으로 산등성이에 큰 향나무가 있어 이곳을 '상나무박이'라고 칭하고 있다.
  • 서낭고개
  • 수원시 율전동 웃밤밭과 장승박이 사이에 있는 고개로, 고개 마루에 서낭이 있으므로 '서낭고개'라 부르고 있다.
  • 선사골(松谷)
  • 삼박골 북쪽으로 가골위(동북쪽)에 있다. 소나무가 많아 '송골'(松谷)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는 농경지이다.
  • 아랫말고개
  • 도룡마을과 큰말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 안터
  • 방죽말 동쪽으로 수원시 율전동 웃밤밭(上栗田)과 경계과 되는 곳을 말한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중엽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걸인·강도등이 들끓어 살수가 없자 어느 도사에게 물으니 마을 앞 노적봉 쪽으로 직선길을 내면 무사하다고 일러주자 이에 그대로 했더니 얼마 안가 부자는 망하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 옻우물
  • ① 부처마을 옆 달보기산 중턱에 있는 우물이다. 본래는 약수터로 부처마을의 식수원이었다. 예전에 가물어 식수원이 고갈됐을 때 인근 사람들이 이 우물물을 길어다 마셨다.
    ② 도룡마을 위에 있는 우물로 피부병에 좋으며 옻 올린데 특효가 있다.
  • 옻우물 고개
  • 부처마을과 조씨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 고개 중턱에 옻우물이 있다.
  • 용아가리
  • 새터마을 서쪽으로 왕송저수지의 상류이다. 풍수로 보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의 안주골 뒷산이 용의 꼬리에 해당되며 이곳은 용의 아가리가 된다.
  • 용아가리들
  • 용아가리 서쪽에 있다. 용아가리와 왕송저수지 사이가 된다.
  • 월암동
  • 회화나무 건너말에 있는 나무(월암동176). 둘레 3.5m, 높이 12m, 수령 약500년으로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가 3층 가지로 되어 있는데, 밑가지에서 먼저피고 웃가지에서 늦게 피면 흉년이 들고, 3층 가지가 고루피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 은골
  • 옻우물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 이리실들
  • 건너말 남쪽에 있는 들로 현재 농경지로 되어 있다.
  • 달보기산
  • 건너말 남쪽에 있는 들로 현재 농경지로 되어 있다.
  • 장고개(場峴)
  • 철도전문대학과 당재넘어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조선시대에 월암동 사람들이 수원장 보러 갈 때 다니던 고개이다. 고개가 높아 고개를 넘으려면 숨이 차 헐레벌떡 거린다고 해서 일명 '벌고개'라 부르기도 하고 월암동에 있는 고개이므로 '월암동 고개'라 칭하기도 한다.
  • 장승박이
  • 도룡마을과 조씨마을 및 건너말 사이 들판 가운데 장승이 있으므로 이곳을 '장승박이'라 칭하고 있는데 현재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두장승이 있다.
  • 절터(寺址)
  • 구봉산 중턱 뱃길재에 조선시대 말엽까지 절이 있었는데, 현재도 주춧돌과 깨진 기와장등이 출토되고 있다.
  • 절터고개
  • 선사골 위에 있는 고개로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고개 중턱에 절이 있다.
  • 진태골
  • 웃말을 말한다. 조선시대 전란이 일어나자 군인들이 진을 쳤던 곳이다.
  • 칼내동산
  • 부처마을 남쪽에 있는 산으로 본래 청주 한씨 선대의 산이었다.
  • 큰애봉
  • 도룡마을 건너말뒤에 있는 산으로, 수원시 율전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큰애봉이란 인근에서 제일 큰 봉우리란 뜻이다.
  • 큰터고개
  • 부처마을과 큰터 사이에 있다. 이 고개를 거쳐야만 수원과 화성군 입북리로 갈수 있다.
  • 학교산(學校山)
  • 강나무골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성주 도씨와 수성 최씨 등의 선산이었다가 그 후 수원신풍초등학교에서 관리하였으나 현재는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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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관리부서 : 문화체육과 문화예술관광팀  김병창 ☎ 031-345-2533 최종수정일 :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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