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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일동

포일동(浦一洞)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의곡면의 포일동·포이동 및 갈산동이었다가 1914년 부령 제111호에 따라 수원군 의왕면 포일리로 되었다. 그 후 1936년 10월 1일 일왕면 포일리로 되었다가 다시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의왕면 포일리로 되었다. 그후 1980년 12월 1일 의왕읍 포일리로 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의왕시 포일동으로 개칭되었다. 이 마을은 청계산 및 학의리에서 흘러 내리는 하천을 끼고 취락이 형성된 곳이므로 '포일동'이라 칭하였다. 이 포일동에는 구렁골·덕장골·벌모루·샛터·성고개·세거리·양지편·임이·진터 등의 자연취락이 있다.

자연취락명일반지명

  • 구렁골
  • 양지편 동쪽에 있다. 구릉지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구렁골'이라 칭한다.
  • 덕장골
  • 현 서울구치소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중엽 좌참찬을 역임한 채세영(蔡世英, 1490∼1563)의 큰 별장이 있었으므로 '덕장골(德莊谷)'이라 불렀다고 하며, 1986년 서울구치소 건설로 인해 폐동되었다. 폐강채씨와 동래정씨의 오랜 세거지이다.
  • 벌모루
  • 서울구치소 주변에 있는 마을로, 넓은 벌판 모퉁이에 있다. 학의천을 앞에 두고 취락이 형성되었다.
  • 샛터
  • 구렁골과 양지편 마을이 생긴 후 조선 말엽에 인근의 주민들이 새로 터를 잡고 형성된 취락이다. 덕장초등학교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 성고개
  • 벌모루와 임이 사이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전란이 일어나자 군인들이 이 마을 주위에 진(陣)을 쳤는데 흡사 성(城)을 쌓은 것 같으므로 '성고개(城峴洞)'라 부르고 있다.
  • 세거리
  • 의왕시 포일동과 과천시 문원동 및 안양시 관양동의 3개시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세거리(三巨里)'라 부른다. 조선조 중엽 순흥 안씨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 양지편
  • 조선조 중엽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아 취락이 형성된 곳으로 마을의 지세가 남향받이로 볕이 잘 드는 땅(向陽之地)이라 하여 '양지편(陽地便)'이라 칭하고 있는데 조선 말엽에는 '양촌(陽村)'이라 불렀다. 벌모루와 청계동 한직골사이에 있는 양지편은 우리나라 국어학의 태두(泰斗)인 이희승박사가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에 태어난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 박사는 5세 때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선친(李鍾植)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하였다.
  • 임이
  • 진터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 순흥 안씨와 나중 정씨의 오랜 세거지이다. 마을에 큰 나무(느티나무)가 두 그루있어 마치 숲을 이룬 것과 같다하여 '임이(林二)'라 칭했다. 또는 '이미'라고 부른다.
  • 진터
  • 조선시대에 전란이 일어나자 군인들이 진을 쳤던 곳이다. 의왕시 포일동과 안양시 관양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 납작고개
  • 임이와 과천시 갈현동 사이에 있으며 고개가 얕다.
  • 돌논
  • 양지편고개와 덕장골 사이에 있는 논이다. 논 가운데 큰 돌이 있어 '돌논'이라 부르고 있다. 수답으로 포일동에서 제일 좋은 논이다.
  • 말등바위고개
  • 임이와 과천시 갈현동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밑에 말등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 무재봉
  • 서울구치소 뒤에 있는 산으로 쌍봉이다. 구전에 따르면 이산 주변에 절을 짓거나 세인이 거주하면 잘되는 일이 없고 패가망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일에 사람들이 재수없는 산이라고 하여 '무재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명에 걸맞게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15일 이곳에 새청사를 짓고 이전하였다. 예전에는 인근에 무지개가 뜨면 반드시 이산을 걸치고 떴다 한다.
  • 벌논
  • 양지편 남쪽으로 울아산 밑에 있는 논이다. 하천 옆에 있는 논이라 토질이 좋지 않다.
  • 벌밭
  • 허허벌판에 있던 밭이다. 현 포일주공아파트가 들어선곳으로 토질이 좋았다.
  • 봇들
  • 한국농촌공사 주변 일대를 일컫는다. 조선조 말엽 이곳 개울가(학의천)에 큰 보를 설치하였으므로 '봇들'이라 부르고 있다.
  • 불당골
  • 채세영의 신도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이다. 일부가 서울구치소에 편입되었다.
  • 비석거리
  • 덕장초등학교 동쪽으로 안양통합정수장 뒤편에 채세영의 신도비가 있는 주변을 '비석거리'라 부르고 있다. 채세영의 신도비는 채세영의 묘에서 약 70m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대리석 비신은 높이 278㎝, 폭 99㎝, 두께 24㎝의 규모이다. 신도비의 앞면 상단은 전자로 「幽明朝鮮國左參贊蔡公神道碑」라 횡서했으며, 이항복이 찬하고 허목이 서와전을 맡았다. 의왕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새고지
  • 서울구치소가 들어선 자리로, 마을이 있었다가 1986년 서울구치소가 건설되자 폐동되었다.
  • 서울구치소
  • 덕장골 주변의 마을을 철거시키고 1984년 11월, 13만평 부지에 20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1987년 11월 15일 준공되었다. 본래 서울구치소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으며 본래의 이름은 '경성감옥'이라 했다가 서대문형무소(1923)·서울교도소(1961)등으로 불리웠다. 그 후 1967년부터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어 내려오다가 건물이 80여년 흐르는 동안 너무 낡고 위치도 도심지에 속하게 되어 도심을 벗어난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감옥으로 세워진 서울구치소는 3천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50개동에 달하는 각 건물이 모두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외부에선 수감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 소나무재논
  • 양지편 끝에 있다. 논 옆에 소나무가 있어 '소나무재논'이라 칭한다. 수답으로 2천여평 남짓한 논이다.
  • 양지편고개
  • 양지편과 덕장골 사이에 있는 고개로 덕장골이 폐동되자 농로만 이용되고 있으며 비포장이다.
  • 울아산
  • 서울구치소에서 남쪽으로 포일동과 내손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김자행, 김노, 서견의 묘가 있다.
  • 절터골
  • 임이 동북간에 있는 골짜기로 무재봉 줄기이다. 조선조 중엽에 절이 있었다가 빈대 때문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 큰우물
  • 양지편 중앙에 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의 식수원이었다.현재 빨래터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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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관리부서 : 문화체육과 문화예술관광팀  김병창 ☎ 031-345-2533 최종수정일 :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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